“야 임마! 80미터 지점에서 속도를 줄이면 어떡해?”
100미터 달리기 기록을 향상 시키기 위해서 항상 달리는 훈련을 하는 중에 선생님께서 나에게 고성을 지르면서 혼내셨던 것이 기억이 난다. 형편없는 학교 성적에 갈만한 대학은 없을 것 같아서 멋모르고 고등학교2학년이 끝나갈 때쯤에 운동을 시작했는데 운동을 좋아하고 소질이 있어서 했다기 보다는 대학이라는 곳에 들어가기 위해서 시작했기에 훈련을 하는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것이 정말 힘들었던 탓이었을까?
힘을 아끼고 체력을 비축하는 쪽으로 운동을 하려 했던 것이 습관화 되었던 시절이었다.
그러다가 100미터 달리기 기록을 측정하던 중에 80미터 지점에서 속도를 줄이는 내 모습에 화를 내셨던 선생님… 그러고 나서
100미터 지점에서 조금 더 떨어진
120미터 지점 정도에 매트리스를 몇겹으로 세워놓으셨던게 기억이 난다.
그러고 나서는
100미터를 다시 뛰게 하셨다.
“메트리스를 몇겹으로 세워 놨으니까 아예 120미터를 전력으로 뛴다고 생각하고 80미터 지점에서 절대 속도 줄이지마”
그러고 나서 100미터까지 전력으로 뛰고 나서 세워놓았던 몇겹의 메트리스에 차라리 몸을 부딪혀 버리는 쪽으로 바꾸었던 기억이 난다.
이러한 경험을 떠 올리면서 나는 구원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왜 사람들은 구원을 하향평준화 시키려고 하는 것일까? 구원을 상향평준화 시키는 것이 잘못된 것인가?
인간은 연약하기 때문에 죄를 지을 수 밖에 없어서 예수님의 피가 필요하다는 말을 쉽게 하는데…
이러한 말이 언뜻보면 정말 맞는 말인 것 같지만 인간은 죄를 극복할 수 없다라는 무언의 메시지를 우리에게 심으려는 것은 아닐까?
인간이 정말로 죄를 극복할 수 없다면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가르친 모든 것을 지키게 하라”는 말씀은 왜 하셨는가? 우리는 어쩌면 구원을 하향평준화 시키는데 너무나 익숙해져 온 것은 아닐까?
독자들의 메일 중에 이런 내용의 말을 하는 것을 종종 본다. “나는 너무 연약하고 먼지 같은 존재”라는 표현들…
헌데 나는 이러한 말에 반만 동의하고 반만 맞다고 생각한다. 정말로 예수를 믿는 자라면 내가 “먼지 같은 존재”라는 것도 처절하게 경험해야 하지만 “먼지 같은 내게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니 바위도 뚫는다”는 것 또한 처절하게 경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한번 생각해 보자. 대학을 들어가기 위한 입학 시험에서,
자격을 얻기 위한 시험에서, 그리고 회사를 입사하기 위한 시험에서 “나는 딱 커트라인에만 맞게 붙어야지”라고 생각하고 공부하는 사람이 있는지……
어쩌면 이러한 당연한 생각을 왜 믿음과 구원에 있어서는 안하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한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라는 구호는 구원을 하향평준화 시키는 시도들 속에서… “인간은 연약하기 때문에 죄를 지을 수 밖에 없고 그래서 예수의 피가 필요해”라는 머릿속에 자리잡은 생각들에서 나온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런지… 어쩔때는 “한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라는 말이 내게는 “내가 비밀리에 은밀히 즐기는 죄악을 나는 포기할 수 없다”는 말로도 들린다.
구원을 상향 평준화 시킬 때 죽어서도 가는 천국을 살아서도 실감나게 누리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실제로 재현시켜내는 영적인 스타들이 많이 배출되는 것이 아닐까? 왜 우리는 천국은 그저 죽어서나 가는 곳으로 생각해야 하는 것일까? 70-80미터 지점에서 속도를 줄이지 않고 아예 120미터를 전력으로 뛸 생각을 가지고 임할 때 비로서
100미터 기록을 향상 시킬 수 있는 것처럼 이제는 더 이상 “인간은 약하니 때문에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다”는 이 반쪽 자리 진실에 휘둘리지 않고 “인간은 먼지와 같다”는 데에서 “그런 먼지에 하나님이 역사하셔서 바위를 뚫는”일들이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 현실로 일어나길 진심으로 바래본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능력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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